李东奇,见证30年

日期:2022-08-05  信息来源:烟台高新技术产业开发区管委  访问次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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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艾多美(中国)有限公司副总经理”,是李东奇现在的身份。在此之前,他还是中韩建交后第一批来华韩国留学生,曾任职于韩国HNC工程技术建设公司、韩国大洲集团大韩水泥有限公司、烟台世宗学堂,是前任烟台韩人商工会副会长、烟台市“十佳民间友好使者”、韩国驻青岛总领事馆烟台领事员,烟台市人民对外友好协会理事代表……

‘애터미(중국)유한회사 부총경리’는 현재 이동기가 몸담은 회사의 직함이다. 그 전에 그는 한중 수교 첫 번째 한국유학생이었으며 톈진의 한국 HNC엔지니어링과 산둥 옌타이의 대주그룹 대한시멘트에서 근무하였고 옌타이 세종학당 초대 학당장과 옌타이 한인상공회 부회장 직을 10년 동안 역임하였으며 칭다오총영사관 옌타이 영사협력원, 옌타이시인민대외우호협회 ‘민간우호사절’ 및 옌타이시인민대외우호협회 이사 대표직을 맡기도 했다.

辗转于不同领域、切换着多重身份的李东奇,如今回顾自己的30年中国生活,有辛酸与坎坷,但更多的是收获与幸福。“最令我欣慰和自豪的是,我亲眼见证了韩中两国建交后的发展历程,也亲身经历了中国发展最迅速的30年。”李东奇对未来充满信心与期待,“因为‘艾’,所以爱。在今后的职业生涯中,我将与艾多美——这个韩中企业界的亲善大使一起,为两国友好交流写就更美好的篇章。”

각기 다른 영역에서 여러 역할을 하며 살아온 이동기는 지난 30년 동안의 중국 생활을 돌이켜 보면 어려움과 좌절도 있었지만 수확과 행복이 더 많았던 거 같다. “제가 가장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한중 양국 수교 후의 발전을 직접 겪어 보고 중국이 가장 비약적으로 발전한 30년을 중국에서 함께 지켜 본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이동기는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에 가득 차있다. “앞으로 저는 한중 관계에 친선대사 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 애터미와 함께 양국의 우호교류를 위해 더 아름다운 장을 열 것입니다!” 

中韩建交后的第一批韩国留学生

한중 수교 첫 번째 한국유학생

时间追回到1992年。当时李东奇还是韩国一所大学中文系的大二学生。“刚考入中文系时,韩中两国还未建交,所以韩国使用的是中国台湾式注音符号。直到第一学期末,突然教材全部换掉,正式学习中国拼音。”李东奇回忆道,而更令他想不到的是,他与中国的缘分,便从那一刻悄悄开始了。

一天,校长把他叫去,告诉他,中韩就要建交,作为两国教育事业交流的一环,要从他们学校选拔几名学生去中国留学,而李东奇位列备选人员中。“在对中国这个国家一无所知的当时,比起认真考虑校长的建议,我首先对未来充满担忧。”不过再三考虑后,他觉得要学好一门外语,到对象国去留学是最好的选择。于是,他做出了决定。当年8月,两国正式建交,满怀着激动与对未来的未知,他乘上了开往中国天津港的轮船。

天津,对初到的李东奇是一个完全陌生的体制和环境,“但不知为什么,总有一种隐约的亲近感,至少对我来说,总觉得来到了一个该来的地方,感到一种莫名的踏实。从此,我开始了自己的中国生活。”

때는 1992년이었다. 당시 이동기는 한국 모 대학의 중국어과 2학년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처음 중국어과에 들어갔을 때는 중국 타이완 식의 주음부호로 중국어를 배우다가 1학년 말 갑자기 교재가 바뀌면서 중국 본토 식의 병음으로 중국어를 다시 배우게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중국에서 이렇게 30년간 생활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2학년이 된 어느 날 재단 이사장(당시 학장)이 그를 불렀다. 한중 수교가 될 예정이고 학교에서 교육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몇 명을 선발해 중국으로 유학을 보내기로 하였다고.. “아직 중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 때, 이사장님의 제안에 먼저 두려움부터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중국어를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종주국에 유학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은 결심을 했습니다.” 드디어 한중 수교가 되었고 설렘 반 두려움 반 이동기는 중국 톈진행 배에 몸을 실었다.

“도착 후 체제가 많이 달라 처음엔 모든 환경이 낯설었지만 이내 곧 친근감이 느껴졌고 드디어 내가 올 곳을 왔구나 하는 안정감이 밀려왔습니다.”라고 하며 그때부터 그의 중국생활은 시작되었다.

站在中国变化的历史面前

중국변화의 역사에 서다

天津师范大学、北京首都师范大学、上海华东师范大学,是最初开放的三处师范类大学。李东奇来中国留学还有一个任务,就是对这三所大学的留学环境分别进行一个月的体验和比较,为以后韩国留学生提供参考。经过一番评估,他最终选择了天津师范大学。

1994-1996年,到了服兵役年龄的李东奇回国参军。“即使在部队中,我也没有忘记在中国研修的那段生活。”因为渴望学汉语,于是他在部队中寻找中文系出身的人,在相互学习、练习汉语的日子中期待着重新回到中国。2年2个月的部队生活一结束,李东奇给父母打了声招呼,随即又奔向了中国。重新回归天津师范大学之时,这里已经发生了许多变化,无论是韩国留学生,还是针对韩国留学生的食堂明显增多。在不断完善的环境中,李东奇轻松愉快地完成了大学学业,于1999年7月,从天津师范大学中文系毕业。

“那段时光,也成为我日后能在中国能顺利、安定地生活不可或缺的经历。”1997年邓小平逝世、香港回归,1999年澳门回归……目睹着中国这些大事件的发生,李东奇站在了中国风云际遇的历史面前。

톈진사범대학, 베이징수도사범대학, 상하이화동사범대학 등 3곳의 사범대학은 초기 개방된 대학이었다. 중국으로 유학 온 이동기에게는 이 3곳의 대학에서 각각 한 달 정도 연수를 하면서 한국유학생들에게 적합한 유학 환경 등을 체크하고 한국 대학에 피드백 하라는 임무도 맡았다. 몇 개월 동안 각 대학을 다니면서 연수를 마친 그는 최후로 톈진사범대학을 선정하고 본격적으로 연수를 시작하였다.

1994년-1996년 동안, 군대복무를 먼저 마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한국으로 복귀하고 2년 2개월간 군대로 들어갔다. 군대기간 동안에도 중국 연수시절을 잊지 못한 이동기는 너무나 중국어를 하고 싶은 나머지 군대에 있는 장병들 중에 중국어과 출신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함께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중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고대하며 군대를 무사히 마쳤다. 그는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거의 부모님께 인사만 드리고 바로 중국으로 향했다. 톈진사범대학에 다시 복귀를 한 그는 이전과 다른 많은 변화를 느꼈다. 그 동안 많은 한국유학생들이 이미 들어와 유학을 하고 있었고, 한국유학생들을 위한 식당들도 많이 생겼다. 많이 좋아진 환경에서 이동기는 열심히 중국어 공부에 매진하였고 1999년 7월 드디어 톈진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게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당시가 저에게는 30년 동안의 중국생활을 있게 해준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1997년 덩샤오핑(邓小平) 서거와 홍콩 회귀, 1999년 마카오 회귀도 중국유학 때 모두 겪어 본 나로써는 마치 내가 중국의 큰 변화와 역사 속에서 함께 산 것 같은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라고 이동기가 말했다.

踏入中国社会生活

중국에서의 사회 생활

大学毕业后,李东奇先后入职了天津的一家韩国综合工程技术建设公司和位于山东烟台的韩国大洲集团大韩水泥公司。但由于公司撤资等原因,李东奇的工作遭遇波折。 

所幸的是,上天在关闭一扇门的同时,又为他打开一扇窗。2009年,当年派他到中国留学的大学校长再次找到他,希望他出任世宗学堂的堂长一职。世宗学堂是韩国文化体育观光部为传播韩语和韩国文化而设立的财团机构,当时,已经在山东设立了两家,打算在烟台设立第三家。想到这是一个以加强中韩文化交流为宗旨的机构,李东奇欣然接受。经过2年的辛苦筹备,2012年3月,烟台世宗学堂正式对外开放。它的设立,构建了在烟台地区传播韩语的课程体系。此外,学堂还面向烟台当地设有韩语系的5所大学举办韩语口语大赛,一直延续至今。在文化交流的道路上,烟台世宗学堂在李东奇的引领下一步步踏实走来,也因此当选为全球最优秀的世宗学堂。

或许是与烟台有缘,在这里收获事业的同时,李东奇也迎来了自己的挚爱。

“一般驻外人员一到适婚年龄就比较苦闷。”不过,好在李东奇有一个习惯——入乡随俗,来到烟台后,很快就融入到当地人中,尤其跟一位地方政府局长交情甚深。

“有一天,他打来电话说,在参观一家韩国企业时,遇到一位跟我很般配的优雅女性。”在这位局长的牵线搭桥下,李东奇跟这位韩国女士缔结了连理之缘。“在中国,一位中国人,成就一对韩国夫妇的美好姻缘!仅是听听就令人格外珍惜。”李东奇幸福地说。

톈진사범대학을 졸업 후 바로 톈진에 있는 종합엔지니어링 건설회사와 산둥성 옌타이시에 소재한 한국의 대주그룹 계열 대한시멘트에 취직했지만 회사의 변고로 이동기의 직장생활은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

나쁜 일도 있었지만 좋은 일도 함께 있었다.

2009년, 한중 수교 때 그를 유학생으로 파견해 준 대학 재단이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와 세종학당의 학당장 자리를 부탁했다. 세종학당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단기관으로 그 당시 산둥성에 2개가 설치되었는데 새로 옌타이에 3번째로 신설될 예정이었다. 세종학당은 한중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설립되는 기관이라 생각하고 이동기는 망설이지 않고 제안을 받았다. 2년간의 준비를 끝내고 2012년 3월에 옌타이 세종학당의 그 문을 열었다. 학당은 옌타이 지역에서 한국어 전파를 위한 수업의 체계를 구축하고 한국어 교육을 하는 동시 옌타이 소재 대학 중에 한국어과가 설치되어 있는 5개 대학을 대상으로 한국어말하기대회를 시작하여 올해까지 그 대회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한중 문화교류의 길에 한 발 한 발 나아가 그 성과로 인해 옌타이 세종학당은 전세계 세종학당 중, 최우수 세종학당으로 선정이 되었을 정도이다.

아마도 옌타이와 인연이 깊은지 여기서 직장을 찾은 동시에 평생의 반려자도 만났다.

“보통 중국에 주재원으로 나온 총각들은 결혼적령기가 되면 고민이 깊어집니다.” 운이 좋게도 옌타이에 온 후 이동기는 현지 정부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어느 날 평소에 친분이 돈독한 지방정부 국장이 그에게 연락이 와서 한국기업 참관 도중 그 기업에서 그의 배필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 국장의 소개로 둘이 만나게 되어 결국 천생연분을 맺게 되었다. “중국에서 중국 분이 한국인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다니! 아주 드문 일이라 더 없이 소중한 인연이죠.”라고 이동기는 행복하게 말했다.

因为“艾”,所以爱

애터미 덕분에 사랑한다

7年的世宗学堂堂长任期转眼结束了。已过不惑之年的李东奇,迎来了他心目中“充满热情的最后一个职场——艾多美”。

“这是一家迥异于其他韩企的公司。”李东奇回顾2017年初入职时的场景说,“当时,艾多美的企业文化带给我非常新鲜的气息。自由的工作氛围、以平衡为中心的工作环境、注重分享的企业文化……乍一看,俨然是一家社会公益企业。”说来也巧,入职后,李东奇接到的第一项任务就是做公益项目。

作为目前山东省内单体最大的跨境电商企业,艾多美(中国)有限公司是2017年2月在烟台高新区成立的以“生产+销售”等综合渠道为一体的韩国企业。

“但成立之初,公司的营业体系还没建好,在没有任何收入的情况下,首先做社会公益!当时的我始终无法理解。”不过,随着艾多美中国法人的设立,李东奇便踏上了奔赴内蒙古的行程。在深入考察了鄂尔多斯沙漠化严重的地区后,艾多美和中国绿化基金会签署了5年内在2000亩沙漠地带种植20万株沙棘数的合约,所需200万元费用由艾多美承担。到今年,已经是第三个年头,艾多美已经完成了13万株的植树。

因为“艾”,所以爱。深受艾多美的影响,李东奇也在用自己的实际行动,践行着公司的企业文化,通过公司的电商平台、生产基地、物流平台,努力为两国企业间的合作交流搭建桥梁。同时,还积极资助中国贫困地区学生、捐赠盲人书籍、支援受灾地区等,至今奉献社会的公益资金已超过2000万元。

“我常常想,30年中国生活中,我一直在优秀的企业中工作,沉浸在充满分享精神的企业氛围中,和它们一起践行着这些美好的品德。实属幸运!从这个意义上来说,艾多美或许是我人生中承载着我的热情的最后一个职业舞台。”

어느덧, 7년간의 옌타이 세종학당 학당장의 임기를 마치고 불혹의 나이가 지난 이동기는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하는 회사를 만났다. 바로 애터미다.

“애터미 중국법인은 다른 한국회사와 다른 점이 많은 회사입니다.” 2017년 초, 처음 입사했을 때를 생각하며 이동기는 말했다. “애터미의 기업문화는 저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반 기업과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와 수평중심의 근무환경, 나눔 문화 등 얼핏 보기에는 사회적인 기업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입사 후에 맡은 첫 번째 업무는 바로 중국사회공익이었다.

지금 산둥성에서 가장 큰 크로스 보더 전자상거래 기업인 애터미(중국)유한회사는 2017년 2월에 옌타이 고신구에 법인을 설립한 기업이다.

“회사의 영업 플랫폼을 건설하기 전, 수입도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먼저 공익사업을 하라는 말을 저는 도무지 이해 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의아해 하면서도 이동기는 입사하자 마자 곧바로 내몽고로 향했다. 내몽고 어얼뚜어쓰에 도착하여 사막화가 심각한 지역을 둘러보고 중국 국무원 산하 직속 기관인 중국녹화기금회와 함께 5년간 내몽고 어얼뚜어스 2000무에 5년간 비타민나무(沙棘) 20만 그루를 심고 모든 비용 200만 위안의 소요자금 전부를 애터미 중국법인에서 부담하는 협약서를 체결하고 올해까지 3년차, 13만 그루의 사막화 방지 나무 식수를 마무리하였다.

애터미의 영향으로 인해 이동기도 행동으로 기업문화를 실천하면서 회사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제품생산공장, 물류플랫폼 등의 플랫폼을 통해 한중 양국 기업 간의 협력과 교류를 위한 가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애터미 중국법인은 사막화 방지사업과 빈곤지역 학교유보수지원사업, 맹인 장애서 서적기부, 재해지역 지원 등 여러 부분에서 이미 사회공헌으로 기부금액이 이미 2,000만 위안이 넘었다.

“항상 생각했던 것이지만 저는 약30년의 중국 생활 가운데 많은 좋은 기업에서 일하면서 함께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그 정신을 함께 할 수 있는 복을 타고 난 것 같습니다. 애터미는 이런 부분에서 제 생애에 마지막 활동무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이동기가 말했다.

来源:金桥杂志记者巩欣帅

供稿单位:国际招商产业园(中韩(烟台)产业园)招商中心

拟稿人:张云霞

审核人:孙轶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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